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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언어(이미지)란 무엇인가?

2015.02.0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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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저지 주에 크리스천 아카데미라는 수양관이 있다. 뉴욕과 필라델피아에서 가깝고 시설이 잘 되어 있고 깨끗하기 때문에 목회자와 성도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그곳에는 울타리를 치고 사슴, , 염소, 토끼, 닭 등을 키우고 있었다. 내가 가면 울타리 안에 있는 동물들에게 가끔씩 주위의 풀을 뜯어 넣어주곤 했다. 어느 날 닭장에 풀을 뜯어 넣어주었는데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풀이 닭장 안에 떨어지자 제일 먼저 덩치 큰 수탉이 쫓아왔다. ‘, 요놈이 먼저 다 먹어버리는 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이 수탉이 먹지 않고 풀잎들을 물었다 놓았다 하면서 맛있는 음식이 왔다고 쿠쿠쿠 소리를 내는 게 아닌가! 수탉의 소리를 듣고 암탉들이 곧 쫓아왔다. 암탉들은 쫓아오자마자 풀을 맛있게 쪼아 먹기 시작했다. 암탉들이 어느 정도 먹은 후에야 수탉이 먹기 시작했다. 이 놀라운 광경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수탉의 암탉 사랑에 큰 충격을 받았다. 개나 돼지 같았으면 서로 먹겠다고 으르렁거리며 싸우면서 먹을 텐데, 신사양반 수탉은 그렇지 않았다.


그날 본 수탉의 암탉 사랑의 그림은 나의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고 지금까지 생생하게 남아있다. 정말 동물들 중에서 개처럼 영리하지는 않지만 수탉이 암탉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수탉이 나보다 낫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과연 수탉만큼 아내를 사랑하고 배려하는가! ‘닭보다 못한 존재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얼굴이 뜨거워졌다. 이 그림은 곧 나의 설교의 귀중한 예화가 되었다. 매년 5월에 가정의 달을 맞으면 꼭 부부에 대한 설교를 했다. 요즈음처럼 한국사회의 이혼율이 높아지는 때에 부부에 대한 설교는 가정의 달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자주해야할 설교주제이다. 가화만사성이라고 했는데, 가정이 힘들면 모든 게 힘들어진다. 가정이 화목해야 하나님의 은혜도 임한다.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면 신앙생활 자체도 힘들어진다. 아니 신앙을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할 장소가 바로 가정이다. 가정에 대한 설교를 하면서 부부사랑을 백번 외치는 것보다 수탉의 암탉 사랑이야기를 하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동물 가운데 미물 중에 하나인 수탉도 암탉을 사랑하는데, 성도로 부름 받은 남편이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해야 하지 않겠는가! 백마다 말보다 한 폭의 그림언어가 우리에게 더 와 닿는다.


그날 사건을 통해서 한국 전통결혼식에서 왜 암탉과 수탉을 묶어 신랑신부 앞에 차려진 상위에 올려두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지혜로운 조상들은 수탉이 얼마나 암탉을 사랑하는가를 오랫동안 보았기 때문에 이제 신랑신부가 결혼하게 되면 남편이 아내를 그렇게 사랑하라는 의미임을 알게 되었다. 어릴 때 전통결혼식을 하는 모습을 동네에서 볼 때마다 왜 닭들을 귀찮게 저렇게 묶어 둘까하고 항상 의문이 생겼었다. 바로 그날 그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그림언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어떤 개념을 마음속에 선명한 그림으로 전달하는 것이 그림언어이다. 부부사랑이라는 개념을 추상적인 언어로 논하는 것이 아니라, 수탉이 암탉을 사랑하는 모습(마음의 그림)을 통해서 부부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수탉의 암탉 사랑이라는 예화에는 얼마나 여러 가지 그림언어가 등장하는가? 수탉, 암탉, , 울타리, 쿠쿠쿠 소리, , 그리고 나는 그 수양관의 그래픽한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그곳에서 키우고 있는 동물들을 열거하였다. 사슴, , 염소, 토끼, 닭 등 그곳에서 키우는 동물들을 열거함으로써 그곳이 얼마나 목가적인 아름다운 곳인가를 상상하게 될 것이다. 사실 그 수양관은 아름다운 곳이다. 이런 그림언어가 시편의 기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언어들이었다. 시편 114편을 보라.

 

바다가 보고 도망하며

요단은 물러갔으니

산들은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은 어린 양들 같이 뛰었도다

바다야 네가 도망함은 어찌함이며

요단아 네가 물러감은 어찌함인가

너희 산들아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아 어린 양들 같이 뛰놂은 어찌함인가(114:3-6).


이 시편을 문자적으로 받으면 이해하기 힘들다. 어떻게 바다가 도망할 수 있는가? 어떻게 요단이 사람처럼 물러갈 수 있는가? 어떻게 산들이 숫양들처럼 뛸 수 있는가? 어떻게 작은 산들이 어린 양들 같이 뛸 수 있겠는가? 그런데 시편 기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출애굽의 기쁨을 생생하고 생동감이 넘치도록 묘사하기 위해서 바로 이런 풍성한 그림언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이런 그림언어들이 듣는 청중들의 가슴에 가장 잘 와 닿기 때문이다. 즉 생동감과 생명력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그림언어를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트렘퍼 롱맨 교수는 그림언어(image)를 이렇게 단순하게 정의하고 있다. 그림언어란 (우리가 시를 읽을 때) 우리의 마음속에 생겨나는 그림들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성경 이미지 사전(Dictionary of Biblical Imagery)에서도 비슷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이미지란 (나무와 집과 같은) 구체적인 것이나 (달리기나 타작과 같은) 행동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우리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어떤 대상이나 행동도 이미지이다.”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사실 이미지의 종류를 열거하자면 구체적인 것이나 행동만으로 묘사하기에는 너무 단순한 느낌이 있으나 개념의 단순화를 위해서는 좋은 정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스트론(B. A. Strawn)은 여러 학자들의 정의를 종합하여 실험적 정의를 내렸는데, 그림언어란 그림을 그리거나 시각적인 것이 공통적인 것이라고 했다. 그림언어의 종류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히 다루겠다


("히브리 시인에게 설교를 배우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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