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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기자들 중에 특히 사도바울은 수사적 표현에 대해서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면,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4-5).

 

사도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본서에서 논하고 있는 그림언어나 대구법을 모조리 부정하는 말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여기서 말하는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은 당시 그리스, 로마시대의 시대적 배경에서 이해해야 한다. 수사법의 유래를 보면 본래 법정에서 자신의 입장을 변증하기 위해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궤변론자들(Sophists)이 등장하면서 수사법은 옳고 그름을 떠나서 무조건적으로 법정논쟁에서 이기는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그리하여 철학자 플라톤은 수사법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기에 이르렀다. 나중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법을 원래의 위치로 돌려놓는다. 수사법이란 설득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이지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바울이 말하는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은 바로 궤변론자들이 실행했듯이 진리의 여부를 떠나서 무조건 이기기를 꽤하는 변질된 수사법에 대한 경고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고든 피(Gordon D. Fee)는 본문에 대한 바울의 의도를 이렇게 보고 있다. “그가 거부하고 있는 것은 설교가 아니다. 더군다나 설득력 있는 설교도 아니다. 그가 거부하고 있는 것은 모든 설교의 진짜 위험인 자기의존이다.”라고 했다.

사실 사도바울이 쓴 서신을 보면 본서에서 강조하는 그림언어와 대구법이 넘쳐난다. 바울이 사용하는 이미지들이 얼마나 종류가 많고 다양한가? 각자의 은사를 설명하기 위해서 지체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고, 사역의 전력질주와 목표의식과 정도(正道)를 가르치기 위해서 달리기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고, 그리스도께 헌신을 설명하기 위해서 군사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고, 올바른 언어사용을 위해서 소금의 맛이미지를 사용하고 있고, 영적인 무장을 위해서 군사들의 전신갑주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다. 사도바울이 이런 풍부한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은 구약성경의 전통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앞으로 보겠지만 구약성경의 시가서와 선지서에는 생동감과 생명력이 넘치는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이는 성경 고유의 수사법들이다. 성경이 이런 성경 고유의 수사법의 사용을 부정하지 않는다. 성경이 사용하고 있는 수사법을 성경이 부정한다면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바울은 또한 대구법도 곧 잘 사용한다. 바울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는 바로 이 본문 속에서조차 두 가지 대구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 (반어적 대구법)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 (반어적 대구법)

 

바울은 여기에 두 번의 반어적 대구법을 사용하고 있다. 어디 여기 뿐 인가? 본문이 나오는 고린도전서 2장에 바울은 여러 가지 대구법을 더 사용하고 있다.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6).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

귀로 듣지 못하고 /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

함과 같으니라(9).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10).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11).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 (12).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13).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14).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 2장에 얼마나 많은 대구법을 사용하는가를 보라. 여기에 사용된 “... / ... //”는 모두 대구법이 사용된 곳이다. 이로 보건데 바울은 성경 중에 특히 히브리 시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이미지와 대구법을 거리낌 없이 사용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24-5절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은 이런 성경적 수사기법을 거부하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성경적 수사기법들은 바울이 사용했던 것처럼 더욱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현시대의 추상화된 언어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다.


("히브리 시인에게 설교를 배우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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