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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

모든 설교의 생명력과 감동의 원천은 성령님이시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성령님의 감동 감화 없이는 어떤 영혼도 변화할 수 없다. 인간의 완악한 마음을 깨뜨리시고 회개하도록 마음 문을 여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다(16:8-9; 고전 12:3). 그렇다면 왜 감동과 생명력을 창조하는 수사법을 배울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성령 충만하게 되면 성령님께서 우리의 언어를 바꾸신다는 사실을 깊이 체험하게 되었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학생 시절에 주의 종이 되겠다고 서원을 했기 때문에 오늘날 목사가 되었고 신학자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큰 병에 걸려 중병으로부터 살려주시면 주의 종이 되겠다고 서원은 했지만 점점 성장하면서 나는 목회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말이 시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나 자신이 깊이 깨닫고 목회자의 길을 가지 않기 위해서 요나처럼 내 마음대로 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나의 두드러진 적성은 이공계 계통이었다. 이과과목을 공부하면 즐거웠고 그래서 고등학생 시절에는 공대에 지망하기 위해서 이과를 지망하게 되었다. 서원은 했지만 신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이런 교만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깨뜨리시기 위해서 고등학교 1학년 시절에 과거 복막염으로 수술한 바로 그곳이 다시 발병케 하여 깨우치셨고, 또 다시 변심하자 이번에는 아예 고등학교에서 쫓아내 버리셨다. 당시에는 집안 사정과 여러 가지 이유로 학교를 그만두었지만 막상 학교를 그만두고 부모님이 목회하는 깊은 농촌에 들어가니 할 일이 없었다. 3년간 버티다가 하나님께 다시 서원을 했다. ‘하나님, 대학만 넣어주시면 이제 변심하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은혜 가운데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여전히 고민은 나처럼 말 주변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목회를 하겠는가라는 의문이었다. 이렇게 고민하며 대학생활을 하고 있을 때, 놀라운 영적인 체험을 하게 되었다.


1985113일 토요일 새벽기도회를 마친 후에 혼자 남아서 403장 찬송(통일)을 수십 회 반복해서 부르던 중에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체험하게 되었다. 머리끝부터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은 떨림이 내려오더니 손에 바위를 깰 듯한 큰 힘이 생겨나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성령 충만을 체험한 이후에 몇 가지 확실히 달라진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전에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전도를 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전도가 되지 않았다. 불교인 학생에게 전도하다가 내 종교가 옳으니, 네 종교가 옳으니하면서 입 싸움을 한 적도 있고, 전도를 받은 학생들은 아무도 마음 문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성령 충만을 체험한 이후에 전도를 하면 십중팔구는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하겠다고 했다. 할렐루야! 전도를 하면 나 자신이 성령님의 은혜로 충만하게 되는 것을 자주 경험하게 되었고, 전도를 받는 학생도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한 번은 전도 중에 천국에 올라간 것 같은 큰 기쁨을 경험하기도 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성령 충만과 동시에 기쁨이 충만했던 모습이 생각났다. 전도 받은 어떤 학생은 예수님을 믿고 곧 친구들과 부모님과 형제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친구도 생겼다. 성령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나 자신이 목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 자신에게 놀란 사실은 그렇게도 말이 어눌하던 내가 청산유수같이 기도하고 1시간 이상 전도를 해도 말이 끊이지 않는 자신을 보고 놀랐다. 이는 성령님께서 주신 은사였다. 그 이후에 말하는 것 때문에 염려하지 않았고 신학공부를 하고 주의 종의 길을 가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서 확실히 깨달은 사실은 성령님은 언어의 재능도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위에서 말한 제잌스 목사의 설교를 들어보면 인간의 언어의 기술로 저렇게 완벽한 대구법과 그림언어를 구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설교 중에 임하시는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을 그의 설교를 들으면서 때로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성령님께서 모두 하시는데, 그림언어 사용이나 대구법 사용은 배울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그래서 필자는 이 책을 쓰고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성령님의 역사 방식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성령님은 인간의 노력을 제외하고 오로지 혼자 일하시는가? 그렇지 않다. 성령님은 우리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시고, 인간이 가진 재능도 도구로 사용하시는 분이시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양육 사역에 대해서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보라.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1:28-29).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자신의 힘만으로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 속에 역사하시는 분의 능력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라고 먼저 전제하고 나도 . . .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라고 표현하고 있다. 바울은 한 영혼 한 영혼을 바로 양육하기 위해서 성령님의 능력과 동시에 자신의 최선을 다한 수고를 통하여 영혼을 세운다고 고백하고 있는 말이다. 우리가 감동과 생명력을 창조하는 히브리 시인의 수사 기법을 배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주신 언어를 사용하시는 영이시다. 그러나 우리의 언어를 어떻게 청중들이 쉽게 이해하고 생동감을 주고 감동을 주는 방식으로 표현해야 하는가는 우리가 연구하고 개발해야할 몫이다. 물론 이 과정 가운데 성령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받아서 해야 한다. 진정으로 영혼을 변화시키는 능력은 성령님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그분의 능력을 믿고 의지해야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분을 의지하면서 언어를 개발하고 수사법을 개발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몫이다.


사실 좋은 이미지를 생각나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다. 성령님의 사역 중에 하나는 생각나게하시는 사역이다(14:26). 그러므로 우리가 노력은 하지만 끊임없이 그분의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림언어를 개발해야 한다. 대구법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대구법은 성령님의 주시는 지혜로 말미암아 생긴다. 잠언에 나오는 그 수많은 기가 막힌 대구법들을 누구 주셨는가? 순수하게 솔로몬의 지혜에서 나온 것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령님의 감동감화하심이 솔로몬에게 있었기 때문에 그런 탁월한 대구법이 나왔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성령님의 지혜와 능력을 구하면서 동시에 수사법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어떤 극단적인 사람들은 이런 수사법을 배울 필요가 뭐가 있는가, 그냥 성령 충만하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는 위험한 생각이다. “이는 성령님 전도하십시오. 마음 문을 여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니, 성령님이 모두 하십시오. 저는 가만히 있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이 잘못된 생각이다. 성령님께서 마음 문을 여시지만 우리가 전도방법을 개발하고 전도지를 만들고 접촉점을 개발해야하는 것은 성공적인 전도를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몫이다. 우리의 사역은 우리의 힘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성령님과의 동역임을 잊지 마시라(15:28).  


("히브리 시인에게 설교를 배우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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