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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언론보도>


월남 패망이 주는 교훈

일본 <산케이신문>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이 패망 전 월남의 모습과 똑같다고 했단다. 군사력에 있어서 월등했던 월남이 굶주리고 있던 월맹에게 왜 패망했는가? 어느 분이 카카오톡으로 보내 준 <산케이신문> 보도 내용 중에 패망 전 부패한 월남의 상황에 대해 묘사한 대목이 필자의 눈을 끌었다.

"문제는 지도층의 부패였다. 티우 대통령의 사위가 군에 입대했는데, 그는 이름만 군적(軍籍)에 둔 채 외국 유학을 떠나 버렸다.
다른 고관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지도층 아들들은 입대 영장이 나오면 일단 입대한 다음 뇌물을 써서 선진국으로 유학을 보내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일선의 군인들은 「저따위 썩은 정권과 나라를 위해 내가 목숨을 바쳐야 하는가?」하며 전의(戰意)를 상실했다."

이 카톡 메시지는 지금 대한민국이 공산화될 우려가 있으니 조용히 있자는 의미에서 보낸 것 같다. 그런데 필자가 글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달랐다. 공산주의가 아니라 우리 내부의 부패가 더욱 큰 문제고 위협이란 사실을 월남의 교훈을 통해 깨달았다.

지금 국민을 분노하게 만든 것이 무엇인가? 바로 특권층의 부정부패 때문에 국민들이 광화문에 촛불을 들고 모이는 게 아니겠는가? 권력을 등에 업은 정유라의 부정한 대학 입학과 부정한 성적 취득, 부정한 모금 활동 등이 국민을 분노하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정경유착으로 인한 부패한 모습을 보면서 성실하게 일하고 있는 국민들은 권력자에 대한 실망을 금치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 날아온 SNS 메시지

최근 미국에 사는 어느 교인으로부터 아내에게 카톡 메시지가 날아왔다. 내용을 보니 옥한흠 목사의 로마서 13장 설교를 잘라 내어 편집한 것이었다. 내용인즉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라는 내용이었다. 그 설교의 전체 내용을 들어봐야 설교의 맥락을 이해하겠지만 그 부분만을 들었을 때 현 시국에 대해서 어떤 항의도 하지 말고 권세에 무조건 복종하라는 뜻으로 들렸다.

필자도 과거에 로마서 13장을 건성으로 읽었을 때 그런 의미로 이해하는 오류를 범한 적이 있다. 요즈음 권력의 부패를 보면서 이 말씀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과연 로마서 13장은 권력의 부패에 대해서 무조건 침묵하고 권력에 무조건 복종하라는 말인가?

편향적인 성경 해석의 위험성

성경을 해석하면서 우리가 극히 조심해야 할 것은 성경 구절을 정경이라는 맥락에서 떼어 내어 고립화시키거나 절대화시켜서 해석하는 행위다. 이럴 경우 해석의 오류에 빠지거나 심지어 이단의 오류에 빠질 수도 있다. 다음 두 구절은 필자가 수업 시간에 자주 사용하는 실례이다.

"뇌물은 그 임자가 보기에 보석 같은즉 그가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하게 하느니라." (잠 17:8)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하고 품 안의 뇌물은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하느니라." (잠 21:14)

이 두 말씀을 표면적으로 이해하면 마치 뇌물이 좋은 것처럼 느껴진다. 이 말씀대로 뇌물을 줘도 된다는 말인가? 이런 말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겠는가? 이런 말씀을 절대화해서 공직자가 뇌물을 준다면 형무소에 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해석할 때는 정경적 맥락(성경 전체의 맥락) 속에서 그 주제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치는가도 반드시 보아야 성경 해석의 오류에 빠지지 않게 된다. 우리가 당장 잠언 전체만 살펴보아도 뇌물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가르치는 말씀이 여러 개 있음을 깨닫게 된다.

지면상 성경 전체에 나오는 '뇌물'에 대한 가르침을 모두 살필 수는 없다. 뇌물에 대한 성경 전반의 가르침은 뇌물을 줘서는 안 된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사무엘의 아들들의 비행은 뇌물을 받는 데 있었고(삼상 8:3), 시편 15편에는 여호와의 성산에 거할 자의 자격으로 뇌물을 받지 않는 자(5절)라고 밝히고 있고, 시편 26편에는 악인의 특징은 "오른손에 뇌물이 가득"한 자(10절)로 밝힌다. 이사야서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패상 중에 하나가 “뇌물을 사랑”하는 자(1:23)이고, 뇌물을 받고 의인을 악하다고 판결하고 악인을 의롭다고 판결하는 재판의 불의(5:23)를 밝히고 있다. 다른 선지서에서도 재판관들이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는데 대해 비판을 가하고 있다(암 5:12; 미 3:11; 7:3). 뇌물이란 주제뿐만 아니라 다른 주제들도 성경 전체 속에서 가르치는 바를 종합해서 파악해야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올바로 적용할 수 있다.

로마서 13장 "권세에 복종하라"는 말의 뜻은?

이미 로마서 13장의 해석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들이 글을 썼기 때문에 여기서 반복하지 않겠다.1) 필자가 밝히고자 하는 것은 로마서 13장이 '어떤 맥락에서 주어졌는가'이다. 그 맥락을 이해하면 이 말씀의 의미를 분명하게 깨닫게 되고 성경 전체에서 권세자에 대해서 가르치는 말씀과의 관계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로마서 13장 1-7절은 국가권력의 '순기능'에 복종하라는 것이 핵심적인 메시지이다. 순기능적인 국가권력은 선한 일에 대해서 보상하고 악한 일에 대해서 처벌하는 정의를 실현하는 권력의 모습이다(3-4절). 조세와 관세와 같은 세금을 내는 것도 국가의 순기능을 위해서 기독교인들이 마땅히 복종해야 할 의무이다(6-7절).

경찰에게 복종하는 것도 국가의 순기능적 권세에 복종하는 행위이다. 경찰에게 복종하지 않는다면 국가의 질서가 어떻게 세워지겠는가? 교통법규를 다스리는 교통경찰의 지시에도 우리는 복종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가 순조롭게 돌아가게 된다. 또 국민의 세상 지위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경찰의 권위를 인정하고 마땅한 존경을 표해야 할 것이다. 국가 권력의 순기능적 관점에서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고 이런 관점에서 권세에 대한 불순종은 곧 하나님의 명을 거스르는 것과 같다고 바울은 강조한다(1-2절).

이런 국가의 순기능이 없다면 국가 자체는 존립할 수 없다. 악한 자를 처벌하지 않으면 그런 국가의 질서가 유지될 수 있겠는가? 이런 순기능을 하는 국가권력이 없이는 살인자들과 강도들과 도둑들과 거짓 증언자들이 우글거리는 사회가 되어 곧 극도로 무질서한 무법천지가 될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국민들이 가장 살기 어려운 곳은 무법천지인 곳들이다(예, 레바논, 소말리아, 시리아 등). 내전으로 인해서 황폐한 곳에는 어느 시민도 마음 놓고 살수가 없고 신앙생활 자체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가 순기능을 하도록 다스리는 자들에게 복종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국가의 순기능을 위해서 납세의 의무, 국방의 의무, 근로의 의무, 교육을 받게 할 의무, 환경 보전의 의무 등을 다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세금을 내지 않으면 국가가 어떻게 돌아가겠는가,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서 무기는 어떻게 구입하겠는가,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는 어떻게 실행하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인은 국가의 권세가 정한 의무를 성실히 모범적으로 감당해야 할 것이다. 왜 공직자의 병역의무 여부를 항상 문제 삼는가? 고위 공직자가 병역의 의무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면 다른 의무도 제대로 이행하겠는가? 사도 바울이 로마서 13장에서 강조하고 있는 점이 바로 이런 관점에서 말한 것이다.

부패한 국가권력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그러나 국가권력이 부패하여 역기능을 하고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국가의 권력이 부패하여 역기능하고 있을 때조차 권세에 대해서 무조건 복종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오늘날 한국교회 일부 성직자들의 문제점이다. 로마서 13장은 국가권력이 역기능하고 있는 때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는 말씀이 아니다. 저명한 성서학자인 F. F. 브루스는 이 점을 잘 관찰하고 있다. "바울은 이 질문을 여기서 다루고 있지 않다"라고 본다.2)

로마 황제 가이사가 하나님의 주신 권세를 넘어 자신을 신으로 여기고 자신을 신으로 섬기라고 할 경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이런 부패한 권력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서 답을 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13장에는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에 대해 예언하고 있는데, 짐승은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권세를 묘사할 때 주로 사용된 이미지이다(단7장; 계13장). 주석가들은 여기에 나타난 짐승이 적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본다. 어떤 주석가들은 로마의 황제들이라고 주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주석이 상반된 것은 아니다. 자신을 신격화한 로마 황제의 권세는 곧 적그리스도의 권세를 상징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3)

그런데 이런 국가의 역기능적 권세는 어디서 온 것일까? 이것도 하나님에게서 온 것일까? 계시록은 이 권세의 출처를 밝힌다. 계시록 13장 2절은 짐승에게 권세를 부여한 것이 '용'이라고 분명하게 밝힌다. 용은 성경에 사탄의 이미지로 주로 사용된 용어이다(계 20:2). 하나님의 부여하신 권세를 넘어선 역기능적인 권세는 곧 사탄이 권세의 출처임을 밝힌다. 이런 역기능적인 국가 권세에 대해서 기독교인들이 복종했겠는가? 아니다. 로마 황제를 신격화하자 많은 기독교인이 황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했다가 순교를 당했다. 이런 권세에 대한 성도들의 해답은 명확하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행 5:29)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미르 문화재단'이란 이름이 성경적 관점에서 보면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미르'라는 말은 '용'의 옛말이다.4) 용은 옛날 임금을 상징하는 짐승인데, 이 용어를 사용한 조직을 만들이 권력의 부패를 초래했다는 점이 뭔가 찜찜한 점이 있다. 물론 동양의 상징과 성경의 상징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미르'라는 용어가 마음에 걸린다. 최순실이 이 용어를 사용한 것도 대통령이 지시하여 사용했다는 점이 더욱 그렇다. 최순실의 입김으로 국정원 로고에도 용 그림이 들어간 것은 뭔가 석연치 않다.

선지자들은 부패에 어떻게 대처했는가?

더 넓은 관점에서 세상 권세자들이 부패할 때 선지자들이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보면 권력이 부패할 때 성도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행동 지침을 얻을 수 있다. 성경에는 왕들이 부패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 그들을 책망하고 경고한 것을 수없이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성군이라고 불리는 다윗이 범죄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때마다 선지자를 보내 책망하시고 회개토록 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죄를 짓고 그의 남편 우리아를 전장의 일선에 내보내 죽게 했을 때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보내셨다. 나단은 다윗의 죄를 책망하고 회개하도록 했다(삼하 11-12장).

나중에 다윗이 또 한 번 큰 죄를 지었다. 이번에는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명하지 않은 인구조사를 했다. 이에 대해서 갓 선지자를 보내 책망하고 하나님의 처벌을 받게 된다. 이때 다윗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 7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삼하 24장).

북왕국에서 가장 악한 왕 중에 한 사람이었던 아합 시대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역사에 가장 두드러진 선지자 두 사람을 보냈다. 엘리야와 엘리사이다. 엘리야는 아합의 우상숭배에 대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갈멜산에서 하나님이 참하나님 되심을 입증하였다(왕상 17-19장).

나중에 아합이 나봇을 불의하게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빼앗은 후에 엘리야는 찾아가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아합의 피도 핥게 될 것이고 아합 가문의 모든 남자는 모두 죽게 될 것을 예언한다. 공모자 이세벨의 시체도 개들이 먹게 될 것을 예언한다(왕상 21장). 엘리야가 아합 왕에게 전한 말은 정말 국가의 왕에게 전하기 힘든 메시지이다. 그러나 선지자는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왕의 범죄에 대해서 외쳤다가 고난을 당한 수많은 선지자가 있다. 유대인 전승에 의하면 이사야는 악한 왕 므낫세에 의해서 톱에 켜져 죽었다고 한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가 수많은 어려움을 당했다. 아합 왕에게 직언을 했던 미가야는 거짓 선지자에게 뺨을 맞고 옥에 갇히기도 했다.

신약성경으로 넘어와서 보면 세례 요한도 왕에게 동일한 직언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헤롯 왕이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에 대해서 불의함을 지적했다가 그는 옥에 갇히게 되었고 나중에 헤로디아의 요청으로 참수형을 당하게 된다(막 6장).

성경에는 권력자들이 부패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 그들의 죄에 대해서 책망하고 회개하도록 촉구한 수많은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다윗과 같이 회개한 왕도 있지만 대부분은 선지자들의 말을 무시하거나 전혀 듣지 않았다. 그럼에도 선지자는 권력이 부패할 때 반드시 사명을 다해 하나님의 공의를 외쳐야만 했다. 이들 선지자의 사명에서 오늘날 성도들이 행동해야 할 사명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이 선지자인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이에 대한 답변은 해석학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우리가 선지자들인가?

구약시대에는 왕, 제사장, 선지자의 직능이 대체로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왕은 국가의 통치자의 직능을 제사장은 성전의 제사 직무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일을 주로 감당했다. 극히 소수의 하나님의 사람들(모세, 사무엘 등) 외에는 대체로 구분되어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만약 왕이 제사장의 사역을 하게 되면 문제가 되었다. 대표적으로 웃시야 왕이 교만하여 제사장직을 수행하려다가 하나님의 징계로 문둥병에 걸려 평생 별궁에서 살아야 했다(대하 26:18-22).

그런데 신약으로 넘어오면서 구약시대의 왕, 제사장, 선지자의 직능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통합된다. 예수님은 구약의 3대 직능을 모두 감당하셨다. 예수님은 영적인 왕이시다. 그의 죄목도 '유대인의 왕'이었다. 빌라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정치범으로 몰아 이런 죄목을 붙였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아이덴티티이다.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중보하시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었다고 밝힌다(히 5-7장). 예수님의 제사장적 중보 사역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린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예수님 보혈의 공로 때문이다. 예수님은 선지자적인 사명도 잘 감당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달하셨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약시대의 세 가지 직임이 통합된 이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도 동일한 3대 직능을 이어받았다. 신약시대 성도들은 구약시대의 왕, 제사장, 선지자의 문자적인 직임을 물려받은 것은 아니지만 이들 직능이 갖는 정신은 이어받은 자들이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적 중보 사역은 이어받지 않았지만 구약의 제사장들이 지닌 다른 차원의 사역들은 함께 이어받았다.

지금 그리스도인들은 제자장직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성도들은 죄인들의 영혼을 받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중보 기도의 사역을 통하여 제사장적 직능을 수행한다. 복음 전파를 통하여 제사장적 사명을 다한다(롬 15:16). 계시록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가르친다(계 1:6; 5:10). 베드로전서는 성도를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고 칭한다(벧전 2:9). 계시록 5장 10절에는 성도들이 땅에서 "왕 노릇"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계시록 20장 4, 6절에도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한다고 말씀하고 있다.5)

그러면 성도들이 선지자적인 사명을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일차적으로 선지자적 사명은 복음 전파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을 전함으로써 감당하게 된다. 또 다른 차원에서 성도들은 세상의 불의에 대해서 정의를 외침을 통하여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하게 된다. 구약시대 선지자들이 직면했던 상황이나 오늘날 성도들이 직면한 세상의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사야나 아모스가 정의를 외쳤던 당시의 사회 상황이나 오늘날 대한민국의 부패한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하나님의 계시가 완성되지 않은 구약시대에는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했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계시가 완성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 정의이고 부정의인지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어떻게 외칠 것인가?

오늘날 일부 기독교인들이 부패한 권력에 대해서 대응하는 방식이 비신자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의 법(일반 은총)을 따라 불의를 보고 불의라고 외친다. 광화문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권력자의 부패에 대해서 잘못된 것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무엇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임에도 비폭력 저항을 하는 모습은 우리 국민이 예전과는 달리 확실히 성숙한 민주 시민이 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일부 기독교 인사들이 종북 좌파 정치 논리에 빠지거나 공산화가 될 우려가 있다는 등 각가지 유언비어 SNS를 퍼 나르면서 불의한 권력을 보호하는 데 앞장서고 있어 마음속에 서글픈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필자는 불법한 방법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퇴진시키자는 뜻은 결코 아니다. 정권교체는 질서대로 순리대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국가에도 유익할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하게 밝히고자 하는 점은 그 정권이 진보든 보수든 상관없이 불의를 행한 것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깨닫게 하고 불의에 대해서는 책임을 반드시 지도록 성도들은 이 시대에 선지자적인 사명을 다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권의 불의에 대해서 눈감아 주게 된다면 누가 기독교를 신뢰하겠는가? 불의와 함께 썩어 빠진 불의한 집단으로 여겨지지 않겠는가?

첫째, 시민들과 함께 불의에 항의하는 촛불을 드는 것도 우리 성도들은 어떤 의미에서 선지자적인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이는 권력자들이 행한 불의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일깨우는 수단이 될 것이다. 대통령이 촛불을 든 자들이 없었다면 최순실 게이트의 책임을 지고 조기에 퇴진하겠다는 말을 했겠는가? 촛불을 든 시민들의 항의를 통해 통치자의 잘못을 깨닫게 했기 때문이다.

둘째, 성도로서 더 중요한 사명은 투표권을 행사함을 통해서이다. 부패한 권력과 부패를 감싸려는 권력에 대해서는 투표권을 통해 확실히 보여 주는 것이다. 권력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지만 국민을 통해서 하나님은 권력자를 세우신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에 의거하여 국민의 권리인 투표권을 정의롭게 행할 권리와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그래야 다시는 부패한 권력을 양산하지 않게 될 것이다. 부패에 대해서 미온적인 대응을 했기 때문에 1970년대의 부정부패한 모습이 21세기에도 재현되고 있지 않은가?

칼뱅도 국가권력에 대해 복종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이 점에 대해서 지지한다. 칼뱅은 왕의 견제 세력들이 왕이 불의를 행할 때 정당하게 권리를 행사하여 왕의 불의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칼뱅의 말을 들어 보자.

"그러나 만일 왕들의 사악한 횡포를 억제하도록 임명된 백성들의 관리들이 있다면 (중략) 그들이 자기들의 의무에 따라서 왕들의 맹렬한 방종을 대적하는 것을 절대로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체 낮은 평민들에 대한 군주들의 횡포를 그들이 눈감아 준다면, 그것이야말로 극악스러운 배신행위라고 선언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호민관으로 지명을 받았음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백성의 자유를 부정직하게 배반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독교강요> 4.20.31)

바로 현시점에 백성을 위해서 국가권력의 부패를 견제 역할을 감당해야 할 사람들은 국회의원들과 사법부가 아니겠는가? 이들이 부패한 권력에 대해서 공정하게 수사하고 탄핵함으로써 부패한 권력에 대해서 견제하는 것이 마땅치 않겠는가? 혹시 기독교 정치가들이 로마서 13장의 잘못된 해석으로 현혹되어 있다면 이번 기회에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깨닫기를 바란다.

셋째, 목회자들과 중직자들은 좀 더 성경적인 가치관으로 무장하여 부패한 권력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깨닫고 성도들에게 올바로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하나님은 교회 지도자들을 이 시대의 파수꾼으로 세워 주셨다. 권력이 아무리 부패해도 입을 다문다면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벙어리 개'(사 56:10)와 같은 자가 되지 않겠는가?

이사야 56장에 나오는 파수꾼과 벙어리 개의 이미지는 위험에 대해서 경고하지 않는 지도자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파수꾼은 적이 오는 것을 알려야 할 사명을 받았다. 만약 경고하지 않으면 파수꾼이 책임을 져야 한다. 목동이 거느리고 있는 개는 들짐승이 오는 것을 짖어서 알려야 한다. 만약 짖지 않으면 양떼가 들짐승에게 뜯기게 된다. 이런 '벙어리 개'는 보신탕이나 해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거짓 선지자와 참선지자의 차이점

북 이스라엘의 왕 중에 소문난 악한 왕이 있다. 그의 이름은 아합니다. 그의 아내는 시돈 왕의 딸로서 이스라엘을 우상숭배에 빠뜨린 주범이다. 그가 통치하는 기간 동안에도 여러 선지자들이 북 이스라엘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엘리야, 엘리사와 같은 탁월한 선지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왕의 비위나 맞추는 거짓 선지자들이었다.

한번은 아합 왕이 전쟁에 나가기 전에 선지자들의 조언을 구한다(왕상 22장). 당시 남유다의 여호사밧 왕과 함께 전쟁에 나갈 참이었다. 아합 왕은 자신에게 항상 달콤한 말만 하는 거짓 선지자 400명을 불러 모은다. 이들은 모두 와서 왕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한다. "왕이여 전쟁에 나가면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이들이 왕의 귀에 듣기 좋은 말을 하지만 사실 이들 거짓 선지자의 말은 아합을 죽음의 자리로 몰고 가는 거짓된 영에 미혹된 말들이었다.

여호사밧 왕은 다른 선지자가 없느냐고 묻자, 아합은 자신에게 항상 불길한 예언을 하는 미가야라는 선지자가 있는데 항상 좋지 않은 소리를 하기 때문에 미워한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경건한 여호사밧 왕은 그에게도 묻기를 요청한다. 미가야는 아합이 길르앗 라못 전투에서 죽으리라고 예언한다. 아합은 분노하며 미가야를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옥에 가두어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마시도록 하게 하라고 명한다. 아합은 그 전투에서 왕복을 벗고 평민으로 가장하여 나갔지만 결국 적군이 우연히 쏜 화살에 맞아 치열한 전투 속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오늘날 권력자들의 부패에 대해서 400명 거짓 선지자들처럼 통치자의 부패에도 좋은 소리만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미가야는 고난을 당하면서도 부패한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실하게 전하였다. 왕의 운명은 그가 전한 말씀대로 이루어졌다.

아합 시대나 지금이나 시대가 어려울 때 양심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매우 적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의 장로교단은 신사참배를 가결했지만 이에 찬성하지 않은 사람은 주기철 목사를 비롯하여 소수에 불과하다. 독일에 나치 정권이 들어설 때 독일 교회는 대부분 정권에 협조했다. 그러나 본회퍼를 비롯한 소수의 목회자들이 정의를 외쳤고, 그는 평안한 미국 생활보다 순교의 길을 선택했다. 루마니아가 공산화될 당시에도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공산 정권에 찬성했지만 범브란트 목사는 공산주의에 대항하다가 오랜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 400명 거짓 선지자의 길인가, 아니면 미가야의 길인가? 제자도의 실천이 쉽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많은 사람들은 십자가의 고난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참제자는 주님 가신 십자가의 길을 선택할 것이다.

김진규 / 백석대학교 구약학 교수

(이 글은 뉴스앤조이의 허락을 받고 올립니다.)

출처: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7658


각주

2) F. F. Bruce, Romans (Rev. Ed.; TNTC; Eerdmans: IVP, 1996), 221.
3) Leon Morris, Revelation (Rev. Ed.; TNTC; Eerdmans: IVP, 1994), 160-161.
4) 표준국어대사전, "미르02," 온라인: http://stdweb2.korean.go.kr/search/List_dic.jsp.
5) 이 견해는 필자가 믿고 있는 무천년설의 입장에서 해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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