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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언론보도>

아래는 백석대학교 김진규 교수의 기고 글입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동성애 쟁점과 관련한 성경 해석 문제를 3회(수, 금, 일)에 걸쳐 연재하고자 합니다. 김진규 교수 글에 따르면, 동성애에 대한 신학적인 논쟁은 7~9가지 성경 본문 해석과 관계된 것입니다. 최근, 복음주의 학자 제임스 브론슨이 새로운 관점에서 동성애 문제를 해석하고 있습니다. 김진규 교수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몇 가지 이슈를 선별해 브론슨의 주된 논점을 따라가며 비판하고 있습니다. - 편집자 주

1. 최초의 아담과 하와의 연합은 "성적 보완성"(gender complementarity)이냐 "혈족 연합"(kinship bond)이냐? (창 2:20b-25)

2. 소돔과 고모라, 기브아 사람의 문제가 폭력과 환대 거부와 강간과 관계된 것인가, 동성애와 관계된 것인가? (창 19장; 삿 19장)

전통적으로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은 동성애로 알려져 왔다. 영어 단어 sodomy는 '남색'이라는 의미로 주로 번역이 되고, Sodomite라는 말이 '남색 하는 사람'으로 번역된 배경에는 창세기 19장에 대한 오랜 이해를 반영하고 있다.

최근 들어 창세기 19장과 사사기 19장을 연구한 학자들은 이들의 일차적인 죄(주된 죄악)가 동성애가 아닌, 폭력과 고대 환대 문화 거부와 강간이었다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들은 창세기 19장이 동성애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한다.1)

브론슨은 소돔과 고모라와 기브아 사람들의 문제점이 폭력 문제, 객에 대한 환대 거부 문제, 강간으로 수치심을 일으키는 문제와 관계된다며, 오늘날 "일생 동안 사랑하며 헌신된 동성애 관계"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상호 동의된, 헌신된, 사랑하는 성적인 관계와 폭력적이고, 강요된 관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도덕적 근시안"에 빠진 오류라고 역설한다.2)

우선 두 본문에 나온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자.

창세기 19장의 사건과 사사기 19장의 사건은 내용상 매우 유사하다. 두 사건 모두 손님의 환대와 관계된다. 창세기 19장에서는 롯이 두 천사를 환대하고 있고, 사사기 19장에서는 기브아의 한 노인이 어떤 레위 사람을 환대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발을 씻으라는 내용과 음식을 접대하는 내용도 비슷하다. 이어서 벌어지는 사건도 비슷하다.

소돔 사람들이 롯의 집을 찾아와서 손님들을 내어놓으라고 떼를 쓰는 장면과 기브아 불량배들이 손님을 내놓으라고 떼를 쓰는 장면이 비슷하다. 소돔성 사람들과 기브아의 불량배들의 폭력성도 매우 비슷하다. 손님을 환대하는 이들이 오히려 큰 위협을 당하고 있다. 이어서 소돔의 롯과 기브아의 노인이 이들을 저지하면서 제안하는 내용도 비슷하다.

롯은 자신의 처녀 딸을 대신 내어 주겠다고 제안했고, 기브아의 노인도 자신의 처녀 딸과 레위인의 첩을 내어 주겠다고 제안한다. 대신, 자신의 집에 찾아온 남자 손님들에게는 해를 가하지 말라고 요청한다. 이런 모습을 우리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시 가부장적인 환대 문화 속에서는 통하는 모습이다.

소돔성에 찾아온 천사들은 소돔성 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하고 롯과 그 가정을 구출하지만, 기브아에서는 레위인의 첩을 불량배들에게 내어 주었고 그녀는 밤새도록 강간을 당하고 아침에 죽게 된다. 이 일로 인해서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은 하늘에서 유황과 불이 비같이 내려와 심판을 받게 되고, 기브아의 불량배들이 속한 베냐민 지파는 다른 지파들의 연합 공격으로 600명만 남기고 전멸을 당하게 된다.

창세기 19:5, 사사기 19:22에 사용된 '야다'라는 말은 성관계를 의미

브론슨을 비롯한 수정론자들이 주장하듯 소돔과 고모라의 죄와 기브아 거민들의 주된 죄가 내용상 환대 거부와 폭력과 강간 등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동성애라는 죄악은 이들 도성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문제인가? 그렇지 않다. 이는 두 본문에 사용된 단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의 욕구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드러난다.

소돔 사람들이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5절)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 '상관하다'는 히브리어는 '야다'라는 말이다. 사사기 19:22("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에서 "관계하리라"라는 말도 동일한 '야다'를 사용한다. '야다'에는 일반적으로 '알다'라는 의미가 있지만 맥락에 따라 '성관계하다'는 의미로도 사용되는 단어이다.3)

창세기 4:1("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에 "동침하매"에 사용된 단어가 '야다'이다. 창세기 24:16("남자가 가까이 하지 아니한 처녀더라")에 사용된 단어도 '야다'이다. 이렇게 맥락에 따라 '야다'는 성관계를 갖는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소돔 사람들도 천사들이 끌어내라고 한 것은 성관계를 위한 요청이다. 이어서 나온 말을 보면 더욱 분명하다. 8절에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라고 롯이 말할 때 사용한 단어가 '야다'이다. 개역개정판 성경에는 이 대조가 분명치 않으나, 원문을 문자적으로 번역해 보면 성적인 뉘앙스가 분명하게 드러난다.4)

(5절) "우리가 그들을 알리라(야다)."
(8절) "남자를 알지(야다) 아니한 두 딸"

유다서 7절을 보면 소돔 사람들의 동성애적 욕구를 배제할 수 없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수정론자들은 유다서 7절이 동성애와는 상관이 없는 말씀이라고 애써 부인하지만 여기에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라는 말을 보면 동성 간 성관계를 암시하는 것이 분명하다.

물론 유다가 염두에 둔 "다른 육체"는 천사의 몸을 암시하지만 소돔성 사람들이 롯의 집에 들어간 사람들이 천사인 줄 알았겠는가? 그들이 알았다면 감히 접근할 엄두조차 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단순히 외부에서 온 남자 손님들로 알았기 때문에 그들과 동성 간의 섹스를 시도한 것이다.

지금까지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의 죄악상을 종합해 보면, 이들 죄악은 외부인에 대한 환대의 거부와 폭력이 주된 죄악이지만, 이 죄악이 동성애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들이 환대를 거부하는 모습은 자신의 성에 찾아온 남자 손님을 동성애의 파트너로 삼아 강간함으로써 이들이 가장 굴욕감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 아닐까?5)

이 견해가 예수님과 거의 동시대에 살았던 필로와 요세푸스의 견해와 거의 일치한다. 이들은 창세기 19:4-11의 주된 죄악을 동성애로 보고 있다.6)

그렇다면 폭력과 강간에 의한 동성 간의 섹스가 오늘날 합의로 이루어지는 동성애자들의 관계와 무슨 관련성이 있는가? 이 점이 바로 브론슨과 수정론자들이 이들 본문의 현재적 관련성을 부정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이런 접근은 본문의 내러티브가 의도한 의미를 완전히 오도한 접근이다.

지금까지 동성애를 연구하는 사람은, 전통주의자든 수정론자든 이 두 본문을 함께 뭉뚱그려서 다루어 왔다. 이런 접근은 1980년대 이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내러티브적인 접근과는 완전히 다른 한물간 구시대의 접근이다.

창 19장과 삿 19장은 "전형적 장면"(type scene)이란 관점에서 읽어야

이미 앞의 본문 분석에서 암시하였지만 창세기 19장 이야기와 사사기 19장 이야기는 여러 면에서 유사점이 많다. 이런 유사성은 소위 로버트 올터(Robert Alter)가 밝힌 성경의 두드러진 문학적인 기법인 "전형적 장면"(type scene)이다.7)

올터가 밝힌 성경의 두드러진 전형적 장면들은 불임 어머니에게 영웅의 출생 예고라는 전형적 장면(이삭 출생 예고, 사무엘 출생 예고), 약혼의 전형적 장면(이삭, 야곱, 모세의 배우자를 만나는 장면), 방문의 전형적 장면,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전형적 장면(아브라함, 이삭) 등을 볼 수 있다.

과거 역사 비평에서는 '전형적 장면들'은 주로 중복된 자료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문학적 접근에서는 당시 고대 근동의 문예적 관습을 반영한 탁월한 내러티브 기법으로 본다. 전형적 장면의 유사성과 차이점 등이 독자에게 전하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고 본다. 올터의 말을 들어 보자.

"전형적 장면의 사용에 있어서 반복된 사실은 새로운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중요하다. 그리고 이 관습 자체는 성경의 일신교보다 그 기원이 앞서는데, 두드러지게 일신론적 목적을 위해 사용하도록 만들어져 왔다. 즉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신적 작정된 운명의 반복적 리듬을 내러티브에서 재생산하도록 하기 위함이다."8)

창세기 19장과 사사기 19장은 '죄의 심판'에 대한 탁월한 전형적인 장면이다. 이 두 전형적 장면이 거의 1,000여 년이란 간극을 두고 이렇게 유사한 문예적 특성을 갖고 나타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 전형적 장면에서 하나님의 작정된 운명을 반복적으로 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이렇게 분명하게 드러난 전형적 장면의 특성을 간과하고 두 본문을 평면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두 본문을 기록한 내러티브의 의도를 완전히 잊은 접근이다.

창세기 19장과 사사기 19장은 '죄의 심판'의 전형적 장면

이 두 전형적인 장면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나그네에 대한 환대 거부와 동성애로 표출되는 폭력적 강간과 같은 심각한 죄악은 하나님의 심판을 부르게 된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 준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약 1,000여 년이라는 역사의 간극을 두고 이렇게 유사한 전형적 장면이 재현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해답은 그 중간 시기에 동일한 동성애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레위기 18, 20장에 있다.

레위기에서 동성애를 다루는 중요한 맥락은 바로 이런 죄악 때문에 가나안 족속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절당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레위기 18, 20장은 가나안족의 이런 죄에서 대해서 심판을 예고하고 있고, 여호수아서에는 가나안족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당하는 모습들을 보여 준다.

그런데 사사기에 가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여 가나안 족속들의 풍속을 본받아 이들도 동일한 죄악에 빠진 모습을 보여 준다. 레위기 18:28-30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죄에 빠지면 동일한 심판을 받게 된다고 명시적으로 경고한 메시지를 무시한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를 사사기 19장을 통해 분명하게 보여 준다.

사사기 19장은 바로 창세기 19장의 죄의 심판이라는 '전형적 장면'을 내러티브 기법을 사용하여 동성애로 표출된 폭력과 환대의 거부가 결국 동일한 심판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밝히 보여 준다. 특히 두 전형적 장면에서 두드러지게 반복된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과 기브아 불량배들이 외친 말이다.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야다)." (창19:5)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야다)." (삿 19:22)

개역개정판 성경에는 다른 단어를 사용하지만 원문에는 모두 '야다'라는 동사를 사용하여 동일한 말을 반복하고 있다. 이 반복 효과는 무엇을 강조하는가? 소돔 사람과 기브아 사람들의 죄의 핵심은 폭력인데, 바로 동성애라는 방법으로 나타난 폭력임을 강조한다.

소돔과 고모라, 기브아 사람들의 동성 강간은 당시 동성애 문화 범람을 암시

그런데 소돔과 기브아 사람들이 이렇게 동성 간의 강간을 시도한 것은 배운 바가 없이 시도한 것일까? 소돔과 고모라와 기브아 거민들이 이렇게 손님을 강간하려는 행위는 이들 문화 속에 깊이 자리 잡은 동성애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레위기 18:22, 20:13은 남성 간의 강간을 염두에 둔 말씀이 아니라, 분명히 '합의된 동성애'를 염두에 둔 금령이다(이 문제는 다음 글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룬다).

레위기 18, 20장은 당시 가나안 사회에 편만하게 퍼져 있던 합의된 동성애를 포함하여 근친상간, 간음, 수간, 우상숭배를 염두에 두고 이들을 향해 심판을 선언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들과 같이 망하지 않으려면 이들의 풍습을 본받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레 18:24-30). 소돔과 고모라와 기브아 거민들의 동성애적 강간 시도는 이들 문화 속에 깊이 뿌리박힌 동성애 문화 일부분을 드러낸 것이 분명하다.

동성애는 공동체를 망하게 하는 죄악

다시 브론슨의 원래의 쟁점으로 돌아가 보자. 소돔과 고모라와 기브아 사람들의 남성에 대한 폭력적 동성 간의 섹스가 현시대의 합의된 동성애에는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 그런데 이 문제는 창세기와 사사기의 전형적 장면에서 볼 수 있는 메시지와는 전혀 방향이 맞지 않는 적용이다.

여기서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동성애를 포함하여 손님에 대한 환대 거부와 폭력적 강간의 결과로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는 사실이다. 동성애 풍속에 물든 가나안 사람들이 멸절당하였듯이 동일한 죄악에 빠진 사사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결론은, 동성애를 포함한 각가지 음란한 행위들과 우상숭배 등 가나안 족속들이 범한 죄가 우리 사회에 나타나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한다는 메시지이다. 동성애는 공동체를 망하게 만드는 죄악이다.

P.S. 그러면 동성애자들을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시에 가장 심각한 죄인으로 여겨진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친구가 되셨습니다(마 9:10-11, 11:19). 우리에게도 이런 열린 마음이 필요하리라고 봅니다. 동성애자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그들과 교제하면서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으로서 그들을 냉대하고 미워한다면 바리새인들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김진규 / 백석대학교 구약학 교수

각주

1) Gagnon, The Bible and Homosexual Practice, 71.

2) Brownson, Bible, Gender, Sexuality, 268.

3) "야다," BDB, 393-395.

4) Gagnon, The Bible and Homosexual Practice, 73~74.

5) Gagnon, The Bible and Homosexual Practice, 90~91.

6) Gagnon, The Bible and Homosexual Practice, 91.

7) Robert Alter, The Art of Biblical Narrative (New York: Basic Books, 1981), 47~62.

8) Alter, The Art of Biblical Narrative, 60.


(이 글은 뉴스앤조이의 허락을 받고 올립니다.)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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