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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언론보도>

1980년대 이후 제자 훈련이 한국교회의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파라처치의 제자 훈련을 교회에 성공적으로 적용한 대표적인 사역자는 옥한흠 목사일 것이다. 옥한흠 목사는 파라처치 훈련 프로그램들의 약점인 교회론을 균형 있게 강조하여, 약점을 극복하고 제자 훈련을 성공적으로 목회 사역에 접목하게 되었다.

그런데 현 시점에서 바라볼 때, 제자 훈련이 기여한 부분 못지않게 보완해야 할 점도 많음을 깨닫게 된다. 특히 제자 훈련이 추구하는 '온전한 사람', 즉 '작은 예수'를 닮고자 하는 시도에 상당한 불균형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한국교회에서 실행되고 있는 대부분의 제자 훈련은 '영성 훈련'과 '사역 훈련'에 있어서 상당히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본다. 옥한흠 목사의 제자 훈련, 김성곤 목사의 제자 훈련, 두란노 일대일 제자 양육, 네비게이토, CCC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자 훈련 프로그램이 복음, 성령 충만, 기도, 말씀, 순종, 자기부정, 그리스도 중심, 믿음, 사랑, 고난 등 제자 훈련의 영성에 필요한 요소들을 골고루 강조하고 있다. 사역의 능력도 예수님의 3대 사역을 본받아 전도, 양육, 제자 훈련, 리더십 훈련, 나눔과 봉사 등을 대체로 균형 있게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래 도표에서 보여 주고 있듯이, '도덕성'이나 '거룩한 지성' 개발에는 현저한 한계가 있음을 보게 된다. 현재 한국교회의 도덕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은 바로 이런 불균형의 결과가 아닌가 우려가 된다.

제자 훈련의 목표
성도를 온전케 하는 것

한국교회에서 누구보다 그리스도인의 인격적인 성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우친 사람은 옥한흠 목사일 것이다. 필자가 그리스도인의 인격적 온전함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은 그의 영향을 힘입은 바가 크다. 그가 미주에서 실행하는 CAL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그리스도의 제자는 먼저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본받는 자여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다. 그의 입에 달린 구호는 그리스도인은 "작은 예수"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작은 예수로서의 인격과 삶을 구비한 자로 만드는 것을 제자 훈련의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옥한흠 목사 자신의 말을 들어 보자.

그러면 제자 훈련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본받는 신자의 자아상을 확립하는 것이다. 예수처럼 되고 예수처럼 살기를 원하는 신앙인으로 만드는 데 있다. 이것이 가장 정확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1)

옥한흠 목사는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더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인격적인 면"과 "사역적인 면"에 있어서 예수님을 본받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힌다. 특히 옥한흠 목사가 힘주어 강조한 점은 예수님의 사역을 본받기에 앞서서 예수님의 인격을 본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그의 말을 들어 보자.

그래서 제자 훈련은 무엇보다 사람을 바꾸어 놓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 말씀과 성령의 감화를 가지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고 온전한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딤후 3:17).2)

이렇게 인격적으로 온전한 사람을 만든 이후에 예수님의 3대 사역을 본받는 소명자로 만들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래서 제자 훈련은 인격적으로 구비된 자를 만든 이후에 예수님처럼 복음을 전파하고 진리를 가르치고 사랑의 치료자로 세우는 과정으로 보았다.3) 옥한흠 목사의 말을 더 들어 보자.

온전케 하는 과정을 어느 정도 그치지 않은 사람에게 봉사의 일을 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 주님의 명령인데 우리는 사정이 급하다는 구실을 내세우며 힘이 덜 드는 지름길을 택하고 있다. 그 결과 한국교회가 어떻게 되고 있는가? 누구 때문에 목회의 생명이 질식당하고 있으며 무엇 때문에 교회 안에 쓴 뿌리들이 자라고 있는가? 성도를 온전케 하기 전에 일부터 먼저 시킨 우리 목회자들의 어리석음 때문이다.4)

옥한흠 목사가 힘주어 강조하는 바는 성도를 먼저 온전하게 한 이후에 사역을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옥한흠 목사는 에베소서 4장 11-12절에 근거해 성도들에게 일을 시키기 전에 반드시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옥한흠 목사가 이렇게 제자 훈련을 외침으로 말미암아 제자 훈련이란 목회 철학이 대한민국 땅에 정착되도록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과거에는 단순한 성경 공부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교회들이 많았는데, 제자 훈련을 도입함으로, 삶을 변화시키는 진정한 신앙 교육이 많은 교회에서 이루어졌다.

옥한흠 목사 자신은 제자 훈련을 '교육'의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을 싫어할지 모르겠지만, 예수님이 보이신 3대 사역의 원리 관점에서 본다면 이는 분명히 예수님의 '가르침'의 사역의 연속임을 부정할 수 없다. 예수님은 '가르침'이란 방법으로 12제자를 제자도를 겸비한 제자로 만들었다. 제자 훈련도 가르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필자가 교육이란 말을 사용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제자 훈련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지만 훌륭한 교육을 받아 그리스도의 제자로 구비된 수많은 성도가 있기 때문이다. 제자 훈련이란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교회 교육 자체를 얕보거나 열등하게 여겨서 안 될 것이다.

필자는 옥한흠 목사 주장에 한편으로 동의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현재 옥한흠 목사의 제자 훈련 교재 자체와 열매를 볼 때 그 방식이 성도를 온전케 하는 일에 얼마나 성공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던져 본다. 이는 옥한흠 목사의 제자 훈련 사역 자체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 훈련 방식에서 좀 더 성경적인 접근을 하자는 취지에서이다. 한국교회에 제자 훈련을 접목한 제1세대에 해당되는 옥한흠 목사의 제자 훈련 방법 중에서 제2세대에 와서 좀 더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보완하자는 말이다.

제자 훈련 목적은 분명한데
표적은 분명치 않아

활을 쏘는 궁수가 과녁을 정확히 조준하지 않고는 표적을 정확히 맞출 수 없듯이, 제자 훈련의 목적은 정확히 명시하고 있으나 그 목적을 이루는 표적이 분명치 않으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아래 도표가 보여 주듯이 옥한흠 목사의 제자 훈련의 약점은 옥 목사 자신이 그렇게도 강조했던 '예수님의 인격을 구비한 자'로 만드는 훈련 프로그램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옥한흠 목사의 제자 훈련은 너무 신학 교리 중심으로 짜인 교재로 구성된 것이 문제점이다. 신학 교리 공부가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다. 신학 교리는 성경 공부 시간이나 혹은 성경 교리반과 같은 별도의 클래스를 만들어 교육할 수 있다. 정말 인격적인 훈련을 원한다면 그리스도의 영성과 사역과 비전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격적인 체취가 묻어나는 그리스도의 덕성과 거룩한 지성을 본받기 위해서 씨름하는 산실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오늘날 제자 훈련의 문제
도덕성·거룩한 지성 빈약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평신도들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문제는 '덕성', 즉 '윤리성'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한 주가 멀다 하고 터지는 성직자들과 사회 저명 기독교인들의 문제가 주로 '도덕성'의 문제가 아닌가? 그러면 제자 훈련을 지도하는 목회자들은 괜찮은가? 내 생각에는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어떤 사람은 일반 목회자들의 윤리성도 못 따라가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현재 제자 훈련에 뭔가 심각한 문제가 드러난 것이 아니겠는가?

옥한흠 목사의 열정과 훈련 철학은 좋지만 훈련 방식에 심각한 결함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옥 목사의 제자 훈련 교재에는 성경이 가르치는 '덕성' 훈련 요소들이 너무나 빈약한 것이 치명적인 약점이다. 반면에 교리적인 내용으로 넘쳐 난다.

덕성 훈련에 강한 제자 훈련으로 거듭나야만이 진정 제자 훈련을 거친 자들의 말과 행실과 의향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겠는가? 사랑과 정절과 정의와 정직과 겸손과 온유와 섬김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인격적인 모습이 드러나지 않겠는가? 방금 말한 덕성의 요소들을 구체적으로 훈련하는 제자 훈련 프로그램이 얼마나 되는가? 아래에 도표를 보면 실망을 금할 수 없다.

그리고 '거룩한 지성'을 구비할 수 있는 훈련 항목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이는 옥 목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 제자 훈련 프로그램에서 이 부분이 가장 큰 취약점으로 드러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교회에서 사역은 잘 하지만 세상 속에서 기지를 발휘하여 영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는 진정한 지혜자들을 찾아보기가 힘든 시대에 살고 있다.

예수님께서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다"(마12:42; 눅11:31)고 하신 말씀의 뜻을 이해하고 있는가? 초대교회 지도자들이 믿음과 성령으로 충만했을 뿐만 아니라 '지혜'가 충만한 자들(행6:3-5)이었음을 잊었는가? 

많은 제자 훈련 프로그램이 예수님 인격의 한쪽 면만 주로 보고 있지, 총체적인 관점에서 조명하지 못한다. 이 점이 가장 큰 약점으로 남아 있다. 이 글에서 필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정말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인격의 총체적인 면을 균형 있게 보고 따르는 균형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울 수 있도록 제자 훈련의 표적(goal)을 분명하게 하자는 점이다.

제자 훈련은 결코 과녁을 잃어버린 채 날아가는 화살이 되어서는 안 된다. 표적을 잃어버린 화살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서운 화살이 된다. 인격적 불균형을 이룬 그리스도의 제자는 결국 그의 약점 때문에 인격 전체가 균형을 잃고 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위험 인물이 될 수 있다.

## 이 분석을 위해서 사용한 교재는 다음과 같다.
각 저자나 기관의 대표적인 저서를 선별하여 사용하였다.

* 옥한흠: 『평신도를 깨운다: 제자 훈련 교재』 (서울: 두란노서원, 1991). 『평신도를 깨운다: 사역 훈련 교재』 (개정판; 서울: 두란노서원, 1991).
* 김성곤: 『열린 모임 비전』 (부산: 두날개, 2007). 『열린 모임 실행 I』 (부산: 두날개, 2007). 『열린모임 실행 II』 (부산: 두날개, 2007). 『양육의 기쁨』 (부산: 두날개, 2007). 『제자의 삶』 (부산: 두날개, 2007). 『군사의 삶 I』 (부산: 두날개, 2007). 『군사의 삶 II』 (부산: 두날개, 2007). 『재생산의 삶 I』 (부산: 두날개, 2007). 『재생산의 삶 II』 (부산: 두날개, 2007).
* 두란노: 『일대일 제자 양육 성경 공부』 (서울: 두란노, 2009).
* 네비게이토: 『그리스도인의 생활 연구』 (SCL) 1~6권 (서울: 네비게이토, 1991).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길』 (DFD) 1~6권 (서울: 네비게이토, 2005). 『제자 훈련 과정』 (64주 과정) 1~10권 (서울: 네비게이토, 1991).
* 이영숙: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성품』 (서울: 두란노, 2007). 『이영숙 박사의 한국형 12성품교육론』 (서울: 좋은나무성품학교, 2011). 이영숙·필립 핏치 빈센트 공저, 『인성을 가르치는 학교 만들기』 (서울: 좋은나무성품학교, 2014).

## 각종 제자 훈련 및 성품 훈련 프로그램의 비교 분석표

1) 덕성(도덕성/윤리성)

  

이 도표가 보여 주듯이 대부분의 제자 훈련은 덕성의 요소들이 상당히 빈약하다. 필자가 성경적 관점에서 제안하고 있는 덕성의 항목들 중에 옥한흠 목사는 7가지를 다루고 있고, 김성곤 목사와 두란노 양육 교재는 단 1가지를 다루고 있고, 네비게이토는 6가지를 다루고 있다. 이영숙 박사의 성품론이 이 분야를 가장 많이 다루고 있는데 8가지를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빈약한 수준이다. 

옥한흠 목사는 긍휼, 정의, 경건, 겸손, 온유, 정직, 인내, 절제, 화목, 양선 등 중요한 덕목들을 빠뜨리고 있다. 제자 훈련 후에 정의롭지 못하거나 겸손하지 않거나 인내심이 부족하거나 절제하지 못하거나 정직하지 못한 제자가 양산된다고 생각하면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닮은 제자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중요한 인격적인 요소들이 빠진 제자를 온전한 인격을 구비한 자라고 할 수 있을까?

김성곤 목사의 제자 훈련
도덕성 훈련에 치명적

두란노의 일대일 양육은 기초 양육이라는 성격상 덕성을 다루지 못하는 약점을 내재하고 있다고 변명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내포한 제자 훈련은 김성곤 목사의 제자 훈련 프로그램이다. 그의 수많은 교재들과 훈련 과정들을 샅샅이 뒤져도 인격적인 요소는 단 한 가지, 그것도 사역과 관련하여 '섬김'을 다루고 있을 뿐 인격적인 항목들은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단지 '인격'이라는 넓은 범주로, 그것도 섬김 외에 단 1회 다룰 뿐이다.

필자가 김성곤 목사의 훈련을 분석하면서 받은 느낌은 이렇다. 성도들을 사역을 위한 기능인으로 훈련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성도들을 온전한 자로 세우는 데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제자 훈련을 받은 제자는 사역에는 열심일지 모르지만 인격적인 불균형을 이루어 언젠가는 훈련 사역 자체가 좌초할 수밖에 없는 성경과 거리가 먼 제자 훈련이 될 수 있다.

네비게이토는 사역의 능력을 체계적으로 배양하는 강점이 있는 훈련 사역이다. 어떤 의미에서 20세기 이후에 제자 훈련이 교회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제자 훈련의 가치를 재발견한 단체가 네비게이토이다. 언어 훈련, 이웃 사랑, 정절, 겸손, 섬김, 정직과 같은 중요한 덕성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중요한 덕목들이 빠져 있다. 행실, 마음(생각), 긍휼, 정의, 경건, 온유, 충성, 인내, 절제, 화목, 양선과 같은 덕목들이 빠져 있다. 그리스도를 닮은 온전한 인격을 추구한다면 이런 덕성들이 반드시 갖추어져야 할 것이다.

이영숙 박사의 덕성 항목들은 교회의 제자 훈련 프로그램이 아니라 세속 학교에 적용한 성품훈련 프로그램이다. 이영숙 박사의 '한국형 12성품 교육론'은 나름대로 성품 개발을 위한 강점이 있다.5) 그럼에도 필자가 성경에서 발견한 기본적인 '덕성' 17가지 항목 중에서 그는 8가지만 다루고 있다. 경청, 긍정적인 태도, 인지(생각), 배려, 책임감, 인내, 절제, 정직 등이다.

물론 필자가 사용하는 용어와는 조금 차이가 있는 용어도 있다. 그러나 유사한 개념까지 합쳐서 따질 때 8가지 개념을 찾을 수 있었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볼 때, 덕성 훈련에 필요한 정말 중요한 항목들이 빠진 느낌이다. 기독교 최고 덕목이요 예수님의 최고 덕목인 겸손과 온유는 어디에 있는가? 이영숙 박사는 배려라는 개념을 사용하지만 기독교의 사랑과 긍휼이라는 개념과는 큰 차이가 있다. 정의, 경건, 섬김, 정절, 화목, 양선 등의 개념은 어디에 있는가? 정말 중요한 성경적 덕목들이 빠진 느낌이다.

그런데 이영숙 박사의 강점은 세속 교육을 위해서 그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한 점이다. '경청'이라는 덕성은 대화에 중요한 속성 중에 하나이다. 그는 '말'이라는 전체를 다루지 않고 먼저 경청하는 자세를 다룸으로, 대화자와 래포(rapport)를 형성할 수 있도록 접근하고 있다. '긍정적 태도'도 행실의 긍정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도록 용어 선별을 잘한 것 같다. '생각'도 12성품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그의 교육의 핵심적인 내용이 생각, 감정,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성품 훈련의 배경에 깔려 있는 좋은 접근이다.

'배려'라는 용어도 필자의 덕성 항목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이는 이웃 사랑과 긍휼과 섬김이 조합된 개념이다. 이영숙 박사는 '배려'를 "나와 다른 사람 그리고 환경에 대하여 사랑과 관심을 갖고 잘 관찰하여 보살펴 주는 것이다"라고 정의한다.6) 필자는 편의를 위해서 배려를 '이웃 사랑' 항목에 포함시켰다. 

'책임감'이란 항목도 필자의 분류에는 이름대로 나타나지 않지만 성경의 '충성'이란 말에 가장 가까운 개념이다. 성경적 충성이란 개념은 맡은 바 직임을 충실히 감당하는 일종의 책임감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계 2:10). 이영숙 박사의 이런 좋은 기여에도, 여전히 중요한 성격적인 덕목들이 빠져 있다. 정절, 정의, 경건, 겸손, 온유, 화목, 양선과 같은 항목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것이 빠진 성품 교육에는 분명히 한계가 존재한다. 정의롭지 않거나 겸손하지 않거나 정절이 없는 바람둥이는 올바른 인격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2) 거룩한 지성

  

제자 훈련의 불모지와 같은 인격적 요소가 바로 '거룩한 지성'이란 요소이다. 거룩한 지성을 대변하는 성경적인 개념이 '지혜'라는 말이다. 지혜 밑에 따라오는 인격적인 요소들은 넓게 말하면 지혜의 각각 다른 측면들을 묘사하고 있는 개념들이다. 잠언을 주의 깊게 읽어 보면 지혜라는 말과 이들 용어들이 때로는 혼용되어 사용되는 경우를 보게 될 것이다. 이는 곧 이런 인격적 속성들이 지혜라는 넓은 개념의 하위개념임을 알 수 있다.

초대교회 지도자들
믿음·성령·지혜 충만

그런데 어느 제자 훈련도 거룩한 지성에 대해서 다루고 있지 않다. 전인격적인 훈련을 해야 하는 제자 훈련에서 인간의 전인격적인 요소 중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지성'에 대해서 다루지 않는 것이 너무나 이상하다. 사도행전에는 초대교회 지도자들이 믿음과 성령이 충만했을 뿐만 아니라 지혜가 충만한 사람들이었다고 밝히고 있지 않은가(행 6:3-5)?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성경이 가르치는 지혜란 '올바른 관계의 기술'이다. 첫째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의 기술이고, 둘째는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의 기술이고, 셋째는 세상과의 올바른 관계의 기술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 9:10). 성경의 지혜와 세상 지혜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성경은 지혜의 근본을 여호와를 경외하는 데 두고 있다는 점이다. 즉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의 기술이 지혜의 가장 중요한 토대란 사실을 밝힌다.

잠언은 또한 수많은 인간관계를 지혜의 관점에서 가르친다. 부모와의 관계, 부부 간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고용인과 피고용인과의 관계, 임금과 신하와의 관계 등을 직접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잠언의 약 1/3은 말에 대한 가르침인데, 말은 결국 인간관계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잠언이 자주 가르치는 주제들인 교만과 겸손, 거짓과 진실, 미움과 사랑, 불의와 공의, 게으름과 부지런함 등 수많은 주제들이 사람들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주제들이다. 이 모든 주제들을 지혜의 관점에서 가르친다. 어리석은 자의 길은 교만, 거짓, 미움, 불의, 게으름의 길이다. 지혜자의 길은 겸손, 진실, 사랑, 공의, 부지런함의 길이다. 이렇게 보면 거룩한 지성은 어떤 의미에서 덕성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정말 덕성을 올바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거룩한 지성이 반드시 구비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거룩한 지성
도덕성과 밀접

성경의 지혜라는 개념 속에 인간관계의 기술의 핵심들이 들어 있기 때문에 성경이 가르치는 거룩한 지성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인격적 훈련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빠뜨린 것과 같다. 예수님은 제자도를 훈련하면서 말과 행위의 중요성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말과 행위의 근원은 바로 인간의 마음에 달렸다는 사실을 가르쳤다(마 12:35).

그렇다면 어떻게 마음을 먹어야 하고, 어떤 말을 해야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배우겠는가? 바로 구약의 지혜서들이 그 비법들을 가르치고 있다. 인격 훈련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말의 기술은 지혜서에서 그 방법을 배워야 한다. 잠언을 펴 보라. 얼마나 말에 대해서 많이 가르치고 있는가?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잠 10:11)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잠 10:19)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어 죽느니라. (잠 10:21)
의인의 입술은 기쁘게 할 것을 알거늘 악인의 입은 패역을 말하느니라. (잠 10:32)

잠언 10장에 나오는 말에 대한 말씀을 몇 가지만 뽑은 것이다. 잠언 10장에는 그 외에도 말에 대한 말씀이 여럿이 있다. 얼마나 말에 대해서 다양하게 가르치는가? 이런 실제적인 말하는 기술을 지혜의 관점에서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지혜는 덕성의 함양을 위해서도 반드시 가르쳐야 중요한 주제이다.

인간관계의 기술
지혜서를 통해 배우라

오늘날 대한민국 교인들의 많은 문제는 실제적인 관계의 기술을 잘 모르는 데서 모든 인간관계의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이는 지혜서를 읽으면서 구체적인 방법들을 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얼마나 자주 기도, 말씀, 성경 공부, 제자 훈련, 성령 충만, 사역 등에 대해서는 강조를 하고 있는가?

반면에 우리가 사람들과 관계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즉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들었는가? 심히 빈약한 실정이다. 만약 목회자라면 자신이 얼마나 지혜서를 설교했는지 한번 검토해 보라. 아마 상당수 목회자가 지혜서에 대한 가르침이 부족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위의 제자 훈련 프로그램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지 않은가?

거룩한 지성은 세상과의 관계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잠언은 세상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다양한 지혜들을 가르친다. 성경이 이미 창의성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 (잠 11:14)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무너지고 지략이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 (잠 15:22)
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이 많음에 있느니라. (잠 24:6)

여기 "지략"이란 말에 사용된 히브리어 어근은 "야아츠"이다. '지략'은 이들 맥락 속에서 칼(Qal) 분사형으로 사용되어 '아이디어를 고안해 내는 사람, 지략가, 고문, 상담자, 조언자'라는 뜻으로 쓰인다.7) 아이디어를 고안하는 것은 창의성과 매우 가까운 용어이다. 나라의 백성들이 평안을 누리는 것은 얼마나 창의성이 많으냐에 달렸다는 말이다(잠 11:14).

잠언 15:22에 나오는 경영은 '계획'이라는 뜻인데, 어떤 계획의 성취도 창의성에 달렸다는 말이다. 전쟁에서 싸울 때에도 창의적인 전략을 갖고 싸우라. 그래야 전쟁에서 이긴다는 말이다(잠 24:6).

우리 성도들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려면 성경의 지혜서에서 거룩한 지혜를 배워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하는 일을 성공적으로 감당할 수 있고, 세상 속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 많은 성도가 신앙생활은 잘하는데, 세상 속에서 무기력하다. 소위 착하기만 한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가?

주님은 제자들에게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동시에 뱀처럼 지혜로운 자가 되라"(마10:16)고 가르치지 않았는가? 우리는 한편으로 비둘기 같은 도덕적 순결성을 가져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뱀의 지혜를 능가하는 지혜를 가져야 험난한 세상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탁월한 성도들이 되지 않겠는가?

제자 훈련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거룩한 지성을 이영숙 박사는 3가지를 다루고 있다. 큰 범주로 분별력을 다루고 있고 그 하위 범주 안에 지혜와 창의성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영숙 박사의 지혜에 대한 정의는 성경적인 정의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는 지혜를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도록 사용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하고 있다.8) 이는 앞에서 말한 성경적 지혜관과 상당히 다르다.

이영숙 박사는 3가지를 다루었지만, 아직 지혜의 중요한 양상들인 지식, 명철, 총명, 슬기, 판단력, 신중함과 같은 요소들이 빠져 있다. 이영숙 박사가 세상 교육에 적용한 지혜의 항목들을 고려하면, 성도들이 현재대로 제자 훈련을 받는다면 세상 교육을 받은 사람보다 지성에 있어서 뒤지지 않겠는가? 제자 훈련은 거룩한 지성의 훈련이 반드시 인격 훈련에 포함되도록 재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김진규 / 백석대학교 구약학 교수

각주

1) 옥한흠, 『다시 쓰는 평신도를 깨운다』 (서울: 두란노, 1998), 194.
2) 옥한흠, 『다시 쓰는 평신도를 깨운다』, 194.
3) 옥한흠, 『다시 쓰는 평신도를 깨운다』, 195.
4) 옥한흠, 『다시 쓰는 평신도를 깨운다』, 196.
5) 이영숙, 『이영숙 박사의 한국형 12성품 교육론』 (서울: 좋은나무성품학교, 2011).
6) 이영숙, 『이영숙 박사의 한국형 12성품 교육론』, 137.
7) "야아츠," BDB, 419 (#3289).
8) 이영숙, 『이영숙 박사의 한국형 12성품 교육론』, 100.


(이 글은 뉴스앤조이의 허락을 받고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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