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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이야기의 천재다.

2015.08.16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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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이야기의 천재이시다. 하나님 나라의 귀중한 진리들을 주로 비유라는 장르를 사용하여 이야기로 풀어가셨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가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설명하지 않으셨다.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할 때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전달하셨다.

 

(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15:11-32).


둘째 아들로 묘사된 탕자의 모습 속에 죄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버지를 멀리 떠나 죄악 가운데 빠져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탕진하고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를 먹는 그의 모습 속에서 죄악에 빠진 한 인간의 비참함을 볼 수 있다. 그런데 탕자가 살아나게 된 계기는 자신의 비참함을 깨닫고 아버지께 돌아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리라는 결심을 하면서부터이다. 아버지의 집 가까이에 왔을 때,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기를 그렇게 간절하게 기다리다가 아들이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춘다. 아버지는 얼마나 아들이 돌아오길 간절히 기다렸는가? 죄인 한 사람이 돌아오길 하나님 아버지는 이렇게 간절히 기다라고 계신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서 새 옷을 입히고 손가락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고 그를 위해 살진 소를 잡고 잔치를 벌인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가를 보이는 대목이다. 여기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의 행동 하나하나가 죄인 한 사람이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 그를 얼마나 극진히 사랑하는가를 보이는 살아있는 그림언어들이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는 진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예수님은 귀중한 진리를 설명할 때, 단순히 추상적인 언어로 설명하시지 않았다. 이야기를 통해서 진리를 전하셨다. ‘누가 우리의 진정한 이웃입니까?’라는 질문에도 이웃은 이런 사람이라고 추상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라는 이야기를 통해서 강도 만난 자를 돕는 사마리아인이 진정한 이웃임을 가르쳐주셨다. 결론적으로 너희도 이렇게 하라고 하셨다. 이야기를 통해 이웃이 누구인가를 설명해주고 이야기를 통해 적용을 유도한 것을 알 수 있다. 설교자도 예수님처럼 그렇게 진리를 전해야 하리라. 추상적이거나 학문적인 논리보다, 그 진리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다. 이것이 성경이 진리를 전하는 방식이다.

(c) 2015 Jinkyu Kim, Institute for Biblical Interpretation & Preaching, 성경해석과 설교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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