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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6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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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에스겔 17장에 나오는 독수리와 포도나무의 비유를 살펴보자.

 

(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여 이르시되 색깔이 화려하고 날개가 크고 깃이 길고 털이 숱한 큰 독수리가 레바논에 이르러 백향목 높은 가지를 꺾되 (4) 그 연한 가지 끝을 꺾어 가지고 장사하는 땅에 이르러 상인의 성읍에 두고 (5) 또 그 땅의 종자를 꺾어 옥토에 심되 수양버들 가지처럼 큰 물 가에 심더니 (6) 그것이 자라며 퍼져서 높지 아니한 포도나무 곧 굵은 가지와 가는 가지가 난 포도나무가 되어 그 가지는 독수리를 향하였고 그 뿌리는 독수리 아래에 있었더라 (7) 또 날개가 크고 털이 많은 큰 독수리 하나가 있었는데 그 포도나무가 이 독수리에게 물을 받으려고 그 심어진 두둑에서 그를 향하여 뿌리가 뻗고 가지가 퍼졌도다 (8) 그 포도나무를 큰 물 가 옥토에 심은 것은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포도나무를 이루게 하려 하였음이라 (9) 너는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그 나무가 능히 번성하겠느냐 이 독수리가 어찌 그 뿌리를 빼고 열매를 따며 그 나무가 시들게 하지 아니하겠으며 그 연한 잎사귀가 마르게 하지 아니하겠느냐 많은 백성이나 강한 팔이 아니라도 그 뿌리를 뽑으리라 (10) 볼지어다 그것이 심어졌으나 번성하겠느냐 동풍에 부딪힐 때에 아주 마르지 아니하겠느냐 그 자라던 두둑에서 마르리라 하셨다 하라(17:3-10).

 

이 비유에 대한 해석은 바로 따라오는 에스겔 1711-21절에 나온다. 여기에 등장하는 첫 번째 큰 독수리’(3)는 바벨론 왕을 상징한다. 두 번째 큰 독수리’(7)는 애굽의 바로 왕을 상징한다. 큰 물가에 심긴 포도나무는 바벨론 왕이 본래 예루살렘에 있던 왕과 귀족들을 잡아간 후에 새로 세운 꼭두각시 왕을 가리킨다. 그가 처음에는 바벨론 왕의 통치아래 있었지만, 나중에 그를 배반하고 애굽의 바로를 의지하게 된다. 이스라엘 왕이 바벨론의 통치 아래 있을 때를 포도나무가 큰 물가에 심겨 큰 독수리의 아래에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바벨론 왕과의 언약을 어기고 애굽의 바로를 향할 때의 모습을 그 심겨진 두둑에서 뿌리가 독수리를 향하여 뻗은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큰 물가로부터 뿌리가 드러나 독수리를 향하여 뻗어있기 때문에 그 포도나무는 곧 마를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이스라엘 왕의 운명을 뿌리가 들린 포도나무에 빗대어 비유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가 바벨론 왕과 언약을 깨고 애굽의 바로를 의지하였기 때문에 바벨론 왕이 그를 잡아가 심판하리라고 선언하신다. 여기서도 두 큰 독수리와 포도나무라는 문자적인 이야기가 목표가 아니라 이 이야기를 통해서 유다 땅에 남아 있던 이스라엘 통치자가 바벨론을 배반하고 애굽을 의지한 결과는 결국 멸망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때문에 역시 이 비유 전체가 은유적이다.

 

무엇보다 비유의 대가는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복잡하고 어려운 진리들을 비유를 사용하여 쉽게 설명하시곤 하셨다. 예수님의 많은 비유들은 하나님 나라와 관계된 비유였다. 마태복음 22장에 나오는 혼인 잔치 비유를 보자.

 

(1)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 그들이 돌아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9)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22:1-14).

 

혼인 잔치 비유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비유를 통하여 드러낸다. 임금이 아들을 위해서 베푼 혼인 잔치는 예수님의 오심으로 지상에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의미한다. 그런데 본래 청했던 사람들이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오기를 거절한다. 이들은 누구일까? 이들은 먼저 구원의 초청을 받은 유대인들을 비유한다. 원래 청한 사람들을 초청하기 위해서 종들을 계속 보내지만 이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기까지 했다. 여기에 종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이키도록 계속해서 하나님 말씀을 선포했던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을 상징하는데, 유대인들이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죽인 역사적 사실을 비유하는 대목이다. 임금이 군대를 보내어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동네를 불사른 것은 로마군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완전히 파괴되고 유대인들이 하나님 나라로부터 버림당할 것을 비유한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말씀하시던 시점에서 보면 로마군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은 미래의 일이기 때문에 장차 일어날 일을 미리 내다보시고 예언적인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다. 원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않기 때문에 임금은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오게 했는데, 이는 유대인들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거절하였기 때문에 이방인들을 모두에게 구원의 문을 열고 초청한 것을 비유한다. 이렇게 해서 누구든지 데리고 와서 혼인 잔치에 손님이 가득하게 된 것은 이방인들이 구원의 초청을 받고 지상 교회에 가득히 모여 있는 모습을 비유한다. 그런데 임금이 잔치자리에 들어왔을 때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발견하고 그를 결박하여 바깥 어두운 곳으로 던지도록 명한다. 여기에 예복은 중요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이는 바로 회개의 예복을 의미한다(7:13-14).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개의 경험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 비유의 결론은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14)는 사실이다. 이는 천국 잔치가 열린 지상 교회에 초청받은 사람들은 많지만 진정으로 회개를 한 사람만이 택함을 입은 자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것을 비유하고 있다.19)


이 비유에서 볼 수 있듯이 비유는 다분히 은유적이다. 혼인 잔치 비유에 나오는 이야기의 각 포인트는 하나님 나라의 또 다른 차원의 진리를 빗대어 설명하고 있다. 청함 받은 자의 잔치에 참여하길 거절한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절한 것을 비유하고, 보낸 종들의 박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낸 선지자들을 박해한 것을 비유하고, 임금의 진노와 심판은 유대인들을 버리실 것을 비유하고, 네거리 길에서 아무나 데려온 것은 이방인 모두에게 구원의 문이 열린 것을 비유하고, 예복을 입지 않은 자의 쫓겨남은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비유한다. 이 비유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심오한 진리를 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비유는 넓은 의미에서 은유의 영역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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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R. T. Frane, Matthew (TNTC; Grand Rapids: Eerdmans, 1985), 310-14; Donald A. Hagner, Matthew 14-18 (WBC 33B; Nelson Reference & Electronic, 1995), 62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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