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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기독교학부 채플 후에 한 학생이 다가와 질문을 했다. “교수님, 예정설에 대해서 설명 좀 해 주세요?” “예정설이 정말 성경에 있습니까?” “성경에 있다면 어디에 있습니까?” “제 친구는 ‘예정설이 맞는다면 전도는 왜 해야 합니까?’라고 질문을 했어요?”

오늘 대화의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려 주겠다고 해서 이렇게 대화의 내용을 요약해서 올린다. 아마 오늘날 장로교인들과 감리교인들이 대화를 하면서 가장 충돌을 많이 하는 부분이 “예정설 교리”가 아닌가 생각이 된다. 그 학생도 감리교인과 대화를 한 후에 고민에 빠져 질문을 해온 것이다.

성경은 예정설에 대해서 뭐라고 가르치는가? 성경은 분명하게 예정의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 오늘 에베소서 1:4-5의 말씀을 찾아 보여주었다.

(4)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은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예정하셨다고 가르친다. 여기뿐만 아니라 로마서 8:29-30에도 예정의 교리가 나온다. 하나님은 구원받을 자들을 미리 아셨고 미리 정하셨고 또 그들을 부르셨다고 분명하게 가르친다. 로마서 9장에는 하나님은 야곱은 선택하시고 에서는 버리셨다고 말씀하는데, 이는 분명한 예정의 교리를 입증하는 실례이다. 이들의 선택과 버림은 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결정하신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씀에 근거해서 어거스틴이나 칼빈 등은 예정의 교리를 확고하게 믿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예정의 교리를 사용할 때는 조심할 점이 있다. 만약 예정의 교리를 숙명론적으로 이해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믿을 사람, 믿지 않을 사람을 정하셨으니 전도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는 실제로 미국의 장로교 역사에 있었던 일이다. 19세기 미국에서 선교사들을 파송하면서 장로교단에서 아시아 지역에 선교사를 파송하기를 거부했는데, 이는 바로 이 예정의 교리 때문이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예정한 사람은 믿을 테니 선교사를 파송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런 주장이 성경적인 생각인가? 아니다. 성경은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고 명하고 있다(마28:18-20).

침례교단은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는 주님의 명령을 받들어 선교사를 열심히 파송했다. 그래서 사실 아시아의 대부분의 나라들에게 침례교회가 많다고 한다. 단 아시아 국가 중에 한국만이 예외적이다. 이런 식으로 예정론을 사용하면 안 된다. 이런 식으로 예정론을 사용하면 전도할 필요도 없게 된다. 하나님께서 예정한 사람 믿을 테니 내가 전도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라고 주장하게 될 것이다. 이런 시각은 성경을 한쪽면만 강조한 잘못된 생각이다.

중요한 점이 바로 이 점이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셨지만 우리 인간은 누가 선택을 받았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거절했다고 해서 그가 하나님의 예정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그가 나중에 예수님을 믿을지 어떻게 알겠는가? 우리가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는 그가 마치 하나님의 예정을 받은 사람처럼 최선을 다해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성경은 복음을 전하라고 수없이 우리에게 명령하고 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인간의 구원을 미리 예정하신 동일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최선을 다해 말씀을 전하도록 명하시고, 동시에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알기를 원하신다는 사실도 말씀하셨다. 우리가 전도할 때는 이런 말씀을 기억하고 최선을 다해서 전도해야 한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복음을 전하면 그 영혼이 구원을 받을 것처럼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런데 이를 강조한 나머지 구원은 인간의 결정에 달렸다고 주장하면 알미니안 주의에 빠지게 된다. 사실 이런 말씀만 모아서 보면 인간의 구원은 자신의 결정에 달린 것처럼 보인다. 예정설을 믿는 장로교인이 알미니안 교리를 믿는 감리교인과 대화를 하면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오늘 나에게 질문한 학생은 자신과 대화를 나눈 그 감리교인이 ‘만약 모든 것을 예정한 하나님이라면 그런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고까지 했단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렇게 모순처럼 보이는 교리를 접근해야 하는가?

해결책은 성경대로 믿는 수밖에 없다.
성경은 사실 2가지를 동시에 가르친다. 한편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미리 결정하셨다고 말씀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구원은 믿으면 받는다고 동시에 가르치고 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고 가르친다.

이런 교리적인 차이점은 어디에 있는가? 어느 각도로 보느냐에 따라 달렸다고 본다. 예정설은 하나님의 주권의 관점에서 교리를 설명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구원 받을 자를 예정하시고 버릴 자를 정하셨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후자는 인간의 관점에서 구원을 설명하고 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구원은 예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달린 것처럼 보인다. 사실 복음을 전할 때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우리는 전도한다. 어느 누구도 전도하면서 ‘하나님께서 당신을 예정하셨다면 예수를 믿게 될 겁니다.’라고 전도하지 않는다. 우리는 마치 복음을 듣는 자가 결정하면 구원을 얻는 것처럼 복음을 전해야 한다. 나는 장로교인으로 분명히 밝혀두는 바는 그렇게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외치지만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마음문이 열리게 하시는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에 달렸다고 믿는다. 이게 사실 성경의 가르침이다(고전12:3).

유명한 변증학자인 코넬리우스 반틸은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제한 개념”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인간의 책임을 침입해서는 안 된다. 반면에 인간의 책임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하나님의 주권을 침입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은 성경이 동시에 가르치는 교리이다. 이 두 개념은 서로에게 제한을 가한다고 해서 “제한 개념”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하나님의 예정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인간은 전도할 필요가 없다고 해서는 안 된다. 반면에 믿으면 모두 구원을 받기 때문에 구원은 인간에게 모두 달렸다고 주장함으로써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침입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분명히 구원 받을 자를 예정하셨다. 동시에 성경은 누구든지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친다(요3:16). 이렇게 상호 모순처럼 보이는 것이 성경의 모든 가르침들이다.

기도는 어떤가? 하나님은 구하기 전에 모든 것을 아신다고 하셨다. 그러면 기도할 필요가 없겠네? 그런데 성경은 너는 부르짖으라고 명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지만 우리는 부르짖어야 한다. 성경의 모든 교리는 “외관상 모순”(apparent contradiction)처럼 보인다고 코렌리우스 반틸 교수는 말한다(여기 영어 apparent라는 말은 ‘외관상’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생각을 인간의 좁은 머리 안으로 제한하려는 극단을 조심해야 한다.

(c) 2015 Jinkyu Kim, Institute for Biblical Interpretation & Preaching, 성경해석과 설교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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